며칠 만 더 있으면 여기에 온 지 일 년이 된다.
그치만 일 년 채우기 전에 다른 도시로 가게 됐다.
처음 오는 도시, 첫 유학, 오랜만의 해외생활로 들떠서 도착한 이 곳은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았다.
예전 어학연수 때는 유학원을 끼고 해서 편했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서류를 다 혼자서 하는 바람에 초반엔 참 죽는 줄...
그 짓을 한 해가 바뀌니 다시 해야하지만 작년보단 더 쉽게 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다.
초반엔 나름 노력하고 친구도 만나고 하다가 2학기가 되면서부터는 사실 다 놓아버렸다.
이 곳에 온 목표는 있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고 설상가상으로 공부도 맞지가 않았다.
따라가려 노력해도 흥미가 너무 떨어져서 진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...
그렇게 오열하면서 운 건 처음이었다.
세수를 하다가 세면대를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었다.
어디 말할 데도 없고 운다고 해결이 나지 않을 걸 아니 더 설움이 북받쳐서...
어학 연수 때고 교환학생 때고 항상 즐거웠다.
향수병 따윈 나랑 먼 얘기였고, 현지인 소리도 들을 만큼 적응도 잘 했다.
웃긴건 프랑스인 친구 하나 없고 외출도 안하고 학기 말엔 불어는 애써서 안 들으려고 까지 했는데도 막상 한국 가니 외국 사냐 소리를 하더라 ㅋㅋ
외국 사는 사람은 그런 이미지가 있다고...
아니아니
그런 이미지 생길 틈도 없이 집에 짱박혀서 무도나 봤다구요 ㅋㅋ
핑계라면 핑계인 이 곳에서의 생활이 맘에 안 들었던 이유는
1) 소도시라서
2) 흐린 날이 너무 많아서
3) 반친구들이 너무 차가워서...
소도시라 혼자서 뭔가 하기엔 시설이 너무 부족했다.
하다못해 산책을 하려해도 날씨가 좋아야 뭘 하지 ㅋㅋ
반친구들 중 먼저 말 걸어주고 도와준 사람들도 있지만 대체로는 무관심했다.
나한테 꼭 관심가져줄 필요는 없지만 배타적일 이유는 또 뭐야...
겉에서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랑 인사도 잘 하고 대화도 잘 한다.
막 처음 만난 사람들이랑 웃고 떠드는거 보면 아 사교성 좋구나 싶은 생각이 처음엔 들지만, 살다 보니 그게 끝이란 걸 알게 됐다.
1회성 만남은 싫고 친구도 깊고 좁게 사귀는 내 성격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.
처음에 반 애들이 서로 다 알고 다 얘기하고 지내길래 아, 이 마흔 명 중에 나만 혼자구나 싶었는데 지내다보니 자기들끼리 다 그룹이 있고 딱 필요할 때만 얘기한다는 걸 알았다.
그걸 알고 나서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.
나도 내 필요에 의해서만 말 걸고 할 때도 있었고...
그렇다고 그게 좋은건 아니다.
여기 와서 알게 된 내 새로운 성격은
1) 정이 많다.
2)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.
2번 때문에 특히 힘들었다.
이상한 남자들한테 대시나 받고...
받아도 안기뻐
이제 가게 될 도시는 프랑스에서 치안 안 좋고 아랍인 많기로 유명한 도시라고 한다.
그래도 바닷가가 있고 날씨가 좋아서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라도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.
작년 12월 부터 3월 까지는 거의 매일 비가 왔다.
크리스마스 전후로 그 들뜬 분위기에 끼지 못하는 나, 노엘 후의 시험, 최악의 날씨 때문에 정말 집에 가고 싶고 우울하고 여기 온 걸 후회했었다.
그래도 어떻게 2학기도 보내고 스타쥬도 하고 실험도 그럭저럭 다 했다.
올해는 그것보다 낫겠지.
올해를 잘 보내면 내년은 한결 더 나아지겠지.
3일간 짐 정리하고 청소하고 하면서 또 서러움이 폭발했었다.
기차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 etat de lieu를 친구한테 대신 해달라고 했었는데
원래 안내키는 목소리로 '그래'라고 하고선 오늘 미리 안된다는 말도 없이 내가 연락하니 그제서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된다고...
다른 사람이 있나 알아보다가 초반에 친하게 지냈던 콜롬비아 남자애들한테 물었다.
6개월 넘게 연락도 거의 안하고 왕래는 당연 없었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서 또 울컥했었다.
근데 1년 내내 봐온 걔는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고 그런 애...
나는 진심으로 대했는데 그런다고 다 돌아오는 건 아닌가보다.
어쨌든 콜롬비아 애들도 다 다른 도시에 있고 시간이 안 맞고 해서 결국 청소부 아줌마한테 울면서 아무도 없고 나 오늘 잘 곳도 없다고 했더니 달래주면서 편의를 봐줬다.
정말 막막하기도 했는데 진짜 마지막 수로 한 번 울어보자 했더니 진짜 들어주더라.
고맙다고 말하고 방에 와서 또 한참을 울었다 ㅋㅋ
엄마는 어른 되는게 쉬운게 아니라면서 또 짠해하셨다.
어른 되려면 멀었다.
아직도 어린애
그래도 철이 들고 있는 것 같다.
엄마의 고생과 걱정이 이제 너무 눈에 보이니까...
덤덤하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오히려 더 짠하다.
우리 이제 서로 짠해하는 사이 ㅋㅋ
나와보니 가족이 제일 소중한 거 알겠고, 내 건강 지키는게 중요하고 (몸+마음), 한국이 살기 좋은 곳인 줄 알겠다 ㅋㅋ
여기서 얻고 싶은 것도 있지만 한국은 우리 나라라서가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뭐 그런게 있다.
특히 가족들 친구들이 있으니까.
그만 울고 열심히 해야지
그러려고 이사도 하고 여기 다시 돌아온거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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