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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일상] 우울한 생일

원래 별로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.
엄마야 매년 생일상 차려주고 친구들도 축하해주지만 정작 나 자신은 태어나서, 또는 살아있어서 좋다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서 그걸 기념하는 것도 싫었다.

아빠 돌아가신 이후였던 것 같다.
내 탓도 아닌데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나보다.
얼마 전에 법정 스님이 엄마의 자살 때문에 힘들어하는 신자에게 조언하는 영상을 봤다.
그 신자가 등 떠밀어 죽인 게 아니라 그 엄마의 문제로 죽은 거니까 안타깝지만 잊고 본인 가족과 자식 돌보라는 말씀.
신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'그렇지만...'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반복했다.

나도 그랬던 것 같다.
아빠랑 살았던 시간보다 이제 없이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.
2년 전 상담을 받으면서 나아졌지만 그래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.

그 애랑 사귀고 얼마 되지 않아서 끅끅 대면서 아빠 이야기를 했다.
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한테 무슨 마음으로 그랬을까...
조용히 들어주고 안아줬던 것 같다.

그런 그 애랑 처음 맞는 내 생일이다.
제네바행 표를 받은 순간부터 들떠있었다.
그 때 이후로 내 생일이 되길 기다린 건 처음이었다.
내 생일 한 달 넘게 전부터 계획하는 그 애랑 보내는 생일이라 어린 애처럼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.

어제 다투지 않았다면 오늘 무언가가 달랐을까?
모르겠다.
기분 나쁘면 말 하지 않는 그 애가 싫다.
고민하다 힘들게 감정표현 했는데 아무 언급도 없는 게 싫고 그러면서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게 싫다.
주말이면 아무 얘기도 없이 본인 볼 일 보는 것도 싫다.
한 번도 사사건건 매 시간 보고해달라고 한 적 없다.
왜 일상을 공유하는 느낌도 못 가지게 울타리 치는 그 애가 싫다.

2월 바캉스 기간에 떨어져 있으면서 이미 그 애는 내 옆에 없는 동안은 그런 식일거라 예상 했지만 기간이 긴 만큼, 그 때보다 마음이 더 해진 만큼 힘들다.

엄마가 옆에 있지 않아서 편찮으시다고 해도 별 느낌이 없다고 말하는 그 애에게 우리가 떨어져 있게 되면 나한테도 그러겠네 싶어서 한참을 우울해했다.
그런 나를 보면서 왜 그러냐 캐묻는데도 대답하지 않았다.
혹시 나한테는 다를 지도 모르니까.
근데 아닌가보다.
성격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변하겠나.
자기 주관 뚜렷하고 고집센 넌데 내가 그런 말 좀 한다고 가족한테도 안 가는 마음이 나한테 올까.

항상 내 얘기 듣겠다고, 거기 있겠다고 말하면서도 참지 못해 내 뱉은 말에 그 애는 아무 감정도 돌려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.

지난 3개월 간 아침에 만날 때마다 어색했던 그 기분이, 그저 내 사랑이 부족해서라 여겼던 그 느낌들은 정말로 그 애가 아침마다 달랐기 때문에 느낀 감정이었다.
이름을 알고, 얼굴을 알고, 수 많은 밤과 낮을 함께 보내고, 목소리, 체취 등 모든 게 같은데도 왠지 모르게 다른 사람 같아서 인사조차 제대로 건낼 수 없는 나 때문에 많이 고민했었다.

3개월이 지난 후에야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침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가면을 뒤집어 쓴다는 말을 했다.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.
난 변기가 없는 집을 구했다는 친구의 농담조차 믿어버릴 정도로 순진하다.
표정도 못 숨기고 거짓말도 못하고 심지어 글에서도 그게 드러나서 감정이고 생각이고 그 애 앞에서는 특히 더 숨길 수가 없다.
근데 그 애는 나랑 다르다.
한 번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랑 더 이상 해나갈 자신이 없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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